심리학 용어 중에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말이 있다.
확증편향의 양상 중에 가장 흔한 것은 증거나 자료에 대하여 취사선택(선택적 사고)을 하는 태도이다.
이는 과학적/경험적 자료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신념이나 이상에 대한 철학적/신학적 논증까지 포함한다.
확증편향을 가진 사람들은,
불완전하고 대표성 없는 자료(증거)를 왜곡된 해석까지 해가면서 중시하는 반면
반증자료에 대하여는 관심을 갖지 않거나 왜곡해석을 하여 증거의 권위를 깍아내리려 한다.

자신이 가진 신념에 부합하는 것이면, 그것이 극히 예외적인 사례라 할지라도 일반화하여 받아들이며,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혹은 자신의 선험지식에 반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일반화되어 있다 할지라도
이를 무시하거나 의미를 축소하여 자신의 신념과 지식을 보호하려 한다.
예를 들면 버뮤다 삼각지대에 대하여 초정상적인 원인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버뮤다 삼각지대 내부보다는 바깥에서 실종/추락/침몰한 항공기와 함선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또한, 항법장치, 통신장비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더구나 블랙박스(비행/항법 기록장치)가 없던 시기에 대량(?)으로 발생한 실종사건들에는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현대에 와서 실종사고가 대폭 줄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심도 가지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지구자기장의 왜곡, 외계인의 납치, 심지어 웜홀까지 동원하여
버뮤다 사건을 설명하려고 드는 강박감을 벗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반이성/비이성적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성적인 집단이라고 평가되는 과학자들조차도 자신의 가설이 구현되도록
실험을 설계하는 경향(이때 불공정하게 설계하기도 함)이 있고,
가설에 들어맞는 실험결과가 나오면 실험과정에서 오류가 있지 않았는지 살피는 노력을 게을리하기도 한다.
반대로 가설에 맞지 않는 실험결과가 나오면
가설을 재검토하기보다는 실험과정에서의 오류를 찾는데만 몰두하거나 실험실 동료의 음모 혹은 실수를 탓하기도 한다.
[인간에 대한 오해 - 스티븐 제이굴드의 책을 보면 자세히 나와있다.]
그래서 과학계는 대조군실험, 재현성 및 반증가능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근래에 그런 과학자를 매장시킨 바가 있다.
확증편향, 나아가 자기기만(self deception)까지 해가며 신념을 고수하는 자들은 도처에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좋지 않은 결과를 야기하는 것은 근본주의적인 종교인들이다.

그들이 바이블에서 어떤 영감을 받은 경우,
바이블을 부정하는 물적 증거나 논리적 반론은 애써 무시하거나 변명하거나 아니면 외면한다.
반면 자신들의 신념에 부합하는 것이면 -설사 그것이 말도 안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열렬한 환영을 한다.
근래(불과 15년 전까지)에까지도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는 이도 있었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믿는 이도 있었다.
- 실은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믿은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과거 미국과 최근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종교에 의해 오염된 정치/외교는 역사적으로 가장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비관적인 것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점이다.
투표를 한 사람들이나, 당선된 사람과 그 그룹들은 자신들의 오류를 절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양심에 털난 게 아니라 아예 양심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이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자신들은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반대세력에 의해 좌절되었다가 그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는 자신들의 정책이 옳았다고 과신하게 된다.
어떤 정책의 미시행이나 다른 방식으로
시행된 결과의 좋고 나쁨은 원정책의 정당성이나 오류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정치학과 경제학의 기본적인 상식인데 말이다.
확증편향은 자기기만을 유인하며,
이것이 프로파간다에 의해 군중심리와 결합되었을 때는 대체로 좋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결과들조차도 확증편향에 의해 무시되거나 망각된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정보나 증거가 비록 편협한 사고와 오류의 결과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인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심리적으로 편안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반이성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을 선택하는 경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추론에 직면하고야 마는 현실이 서글프다.
이성의 영역에까지 독단을 심고는 그런 형태의 믿음이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종교, 특히 중동사막에서 생존의 문제에 심한 압박을 받은 민족이
뻔히 갖게 되는 편협한 방어기제가 창출한 종교는 이런 측면에서 박멸시켜야 하는 것이다.
-p.s-
준거효과
준거효과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직관이 처음 받은 정보나 이미지 등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현상"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예를 들어 보자면...
사람들은 대체로 세계지리 공부를 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들을 두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한다.
A그룹
먼저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예멘의 인구가 500만명보다 많을까 적을까"를 묻는다. 대체로 반반씩 답변이 나올 것이다.
이번에는 500만명보다 많다고 답한 사람들에게 "그럼 예멘의 인구는 얼마나 될까 짐작해보라"고 하면 600만에서 1000만명 사이의 답변이 나온다.
B그룹
먼저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예멘의 인구가 5000만명보다 많을까 적을까"를 묻는다. 역시 반반씩 나뉜다.
이번에는 피실험자 모두에게 자신이 짐작하는 예멘 인구를 500만명 단위로 써보라고 하면 3000만명에서 8000만명 사이의 대답이 나온다.
사실 1990년대 실험 당시 예멘의 인구는 약 2000만명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처음에 받은 질문에 나온 숫자에 영향을 받았다.
좀 더 극단적인 준거효과 실험사례를 살펴보자.
사실 이 실험을 한 이스라엘의 교수가 준거효과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1부터 100까지 있는 행운의 바퀴(미국에선 아직도 동명의 퀴즈프로그램이 있다)를 돌리게 한다.
먼저 자신이 받은 행운의 숫자를 말하게 한 다음에, UN회원국 중에서 아프리카 회원국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해서 말해 보라고 한다.
1~20 사이의 숫자가 나온 사람들은 아프리카 회원국의 비율이 25% 수준일 것이라고 짐작한 반면, 60 이상의 행운의 숫자가 나온 사람들은 아프리카 회원국 비율을 40%~45% 수준으로 짐작했다.
행운의 숫자는 어디까지나 1/100 확률의 무작위적인 숫자에 불과하며, UN의 아프리카 회원국 비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사실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초기정보인 행운의 숫자에 현혹되고 말았다. 이렇게 관련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초기정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준거효과라 한다.
준거효과를 종교인들의 행동에 적용해 살펴보자.
예를 들어 "예수는 사랑"이라는 코드에 현혹된 기독교인은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관념인지 알지 못하며, "심판(비판)받지 않으려거든 심판(비판)하지 말라"는 말이 자신을 노예적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예수는 사랑"이라는 코드에 몰입해 버린 자에게는 예수의 어떤 말도 다 좋게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인용한 말들은 하나는 바울(물론 바울도 수백년 전 것을 표절한 것이다)의 말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보다 3000년 이전에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관련되었기에 호의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소위 깨어있는 신앙을 한다는 기독교인들, 자유/진보주의 신학자들도 이러한 준거효과의 결과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비록 맹신증후군에서는 벗어났을지 모르나, 여전히 예수에게서 "꿈보다 해몽"을 찾는다. 예수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지만, 바이블의 작성취지는 어디까지나 구원론에 입각해 있을 뿐이다.
(이를 위해 원죄, 대속, 부활 등 잡다한 관념들까지 동원되었다)
진보주의 기독교인들이 단지 권력에 의해 왜곡된 예수를 걷어낸다는 명분하에 텍스트들을 재해석하느라 골몰하지만, 바이블의 컨텍스트는 어디까지나 종말, 심판, 구원을 향한 일관된 코드 뿐이다.
준거효과는 각인효과(병아리가 처음 본 것을 어미로 알고 졸졸 따라다니는 것 등)와 유사하다. 하지만 각인효과는 어디까지나 본능/직관에 의한 것이라고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지만, 준거효과도 본능/직관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이성적 판단하에 결론을 내렸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준거효과다.
확증편향의 양상 중에 가장 흔한 것은 증거나 자료에 대하여 취사선택(선택적 사고)을 하는 태도이다.
이는 과학적/경험적 자료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신념이나 이상에 대한 철학적/신학적 논증까지 포함한다.
확증편향을 가진 사람들은,
불완전하고 대표성 없는 자료(증거)를 왜곡된 해석까지 해가면서 중시하는 반면
반증자료에 대하여는 관심을 갖지 않거나 왜곡해석을 하여 증거의 권위를 깍아내리려 한다.
자신이 가진 신념에 부합하는 것이면, 그것이 극히 예외적인 사례라 할지라도 일반화하여 받아들이며,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혹은 자신의 선험지식에 반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일반화되어 있다 할지라도
이를 무시하거나 의미를 축소하여 자신의 신념과 지식을 보호하려 한다.
예를 들면 버뮤다 삼각지대에 대하여 초정상적인 원인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버뮤다 삼각지대 내부보다는 바깥에서 실종/추락/침몰한 항공기와 함선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또한, 항법장치, 통신장비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더구나 블랙박스(비행/항법 기록장치)가 없던 시기에 대량(?)으로 발생한 실종사건들에는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현대에 와서 실종사고가 대폭 줄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심도 가지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지구자기장의 왜곡, 외계인의 납치, 심지어 웜홀까지 동원하여
버뮤다 사건을 설명하려고 드는 강박감을 벗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반이성/비이성적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성적인 집단이라고 평가되는 과학자들조차도 자신의 가설이 구현되도록
실험을 설계하는 경향(이때 불공정하게 설계하기도 함)이 있고,
가설에 들어맞는 실험결과가 나오면 실험과정에서 오류가 있지 않았는지 살피는 노력을 게을리하기도 한다.
반대로 가설에 맞지 않는 실험결과가 나오면
가설을 재검토하기보다는 실험과정에서의 오류를 찾는데만 몰두하거나 실험실 동료의 음모 혹은 실수를 탓하기도 한다.
[인간에 대한 오해 - 스티븐 제이굴드의 책을 보면 자세히 나와있다.]
그래서 과학계는 대조군실험, 재현성 및 반증가능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근래에 그런 과학자를 매장시킨 바가 있다.
확증편향, 나아가 자기기만(self deception)까지 해가며 신념을 고수하는 자들은 도처에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좋지 않은 결과를 야기하는 것은 근본주의적인 종교인들이다.
그들이 바이블에서 어떤 영감을 받은 경우,
바이블을 부정하는 물적 증거나 논리적 반론은 애써 무시하거나 변명하거나 아니면 외면한다.
반면 자신들의 신념에 부합하는 것이면 -설사 그것이 말도 안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열렬한 환영을 한다.
근래(불과 15년 전까지)에까지도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는 이도 있었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믿는 이도 있었다.
- 실은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믿은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과거 미국과 최근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종교에 의해 오염된 정치/외교는 역사적으로 가장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비관적인 것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점이다.
투표를 한 사람들이나, 당선된 사람과 그 그룹들은 자신들의 오류를 절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양심에 털난 게 아니라 아예 양심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이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자신들은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반대세력에 의해 좌절되었다가 그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는 자신들의 정책이 옳았다고 과신하게 된다.
어떤 정책의 미시행이나 다른 방식으로
시행된 결과의 좋고 나쁨은 원정책의 정당성이나 오류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정치학과 경제학의 기본적인 상식인데 말이다.
확증편향은 자기기만을 유인하며,
이것이 프로파간다에 의해 군중심리와 결합되었을 때는 대체로 좋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결과들조차도 확증편향에 의해 무시되거나 망각된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정보나 증거가 비록 편협한 사고와 오류의 결과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인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심리적으로 편안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반이성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을 선택하는 경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추론에 직면하고야 마는 현실이 서글프다.
이성의 영역에까지 독단을 심고는 그런 형태의 믿음이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종교, 특히 중동사막에서 생존의 문제에 심한 압박을 받은 민족이
뻔히 갖게 되는 편협한 방어기제가 창출한 종교는 이런 측면에서 박멸시켜야 하는 것이다.
-p.s-
준거효과
준거효과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직관이 처음 받은 정보나 이미지 등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현상"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예를 들어 보자면...
사람들은 대체로 세계지리 공부를 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들을 두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한다.
A그룹
먼저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예멘의 인구가 500만명보다 많을까 적을까"를 묻는다. 대체로 반반씩 답변이 나올 것이다.
이번에는 500만명보다 많다고 답한 사람들에게 "그럼 예멘의 인구는 얼마나 될까 짐작해보라"고 하면 600만에서 1000만명 사이의 답변이 나온다.
B그룹
먼저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예멘의 인구가 5000만명보다 많을까 적을까"를 묻는다. 역시 반반씩 나뉜다.
이번에는 피실험자 모두에게 자신이 짐작하는 예멘 인구를 500만명 단위로 써보라고 하면 3000만명에서 8000만명 사이의 대답이 나온다.
사실 1990년대 실험 당시 예멘의 인구는 약 2000만명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처음에 받은 질문에 나온 숫자에 영향을 받았다.
좀 더 극단적인 준거효과 실험사례를 살펴보자.
사실 이 실험을 한 이스라엘의 교수가 준거효과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1부터 100까지 있는 행운의 바퀴(미국에선 아직도 동명의 퀴즈프로그램이 있다)를 돌리게 한다.
먼저 자신이 받은 행운의 숫자를 말하게 한 다음에, UN회원국 중에서 아프리카 회원국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해서 말해 보라고 한다.
1~20 사이의 숫자가 나온 사람들은 아프리카 회원국의 비율이 25% 수준일 것이라고 짐작한 반면, 60 이상의 행운의 숫자가 나온 사람들은 아프리카 회원국 비율을 40%~45% 수준으로 짐작했다.
행운의 숫자는 어디까지나 1/100 확률의 무작위적인 숫자에 불과하며, UN의 아프리카 회원국 비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사실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초기정보인 행운의 숫자에 현혹되고 말았다. 이렇게 관련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초기정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준거효과라 한다.
준거효과를 종교인들의 행동에 적용해 살펴보자.
예를 들어 "예수는 사랑"이라는 코드에 현혹된 기독교인은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관념인지 알지 못하며, "심판(비판)받지 않으려거든 심판(비판)하지 말라"는 말이 자신을 노예적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예수는 사랑"이라는 코드에 몰입해 버린 자에게는 예수의 어떤 말도 다 좋게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인용한 말들은 하나는 바울(물론 바울도 수백년 전 것을 표절한 것이다)의 말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보다 3000년 이전에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관련되었기에 호의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소위 깨어있는 신앙을 한다는 기독교인들, 자유/진보주의 신학자들도 이러한 준거효과의 결과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비록 맹신증후군에서는 벗어났을지 모르나, 여전히 예수에게서 "꿈보다 해몽"을 찾는다. 예수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지만, 바이블의 작성취지는 어디까지나 구원론에 입각해 있을 뿐이다.
(이를 위해 원죄, 대속, 부활 등 잡다한 관념들까지 동원되었다)
진보주의 기독교인들이 단지 권력에 의해 왜곡된 예수를 걷어낸다는 명분하에 텍스트들을 재해석하느라 골몰하지만, 바이블의 컨텍스트는 어디까지나 종말, 심판, 구원을 향한 일관된 코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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