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신론 버스 광고가 한국에 상륙하였다.
바로, 반기련에서 무신론 버스 광고를 하기로 한것이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 이어 한국에서도 반기독교적인 버스광고가 등장해 기독교 내에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하 반기련)은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는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한 광고를 지난 5일부터 서울 시내버스 8대에 게재했다.
이찬경(반기련) 회장은 “우리 사회는 다종교인데, 기독교는 독선과 배타에 의해 타 종교를 비방하고 진리는 우리한테만 있다고 얘기한다”며 “예를 들어, 자주 들을 수 있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어떻게 들으면 기독교를 믿든지 아니면 지옥에 떨어져라는 욕으로 들릴 수 있고, 두려움과 불안감을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발언은 타종교나 무신론자를 무시한 행동이기에 우리는 기독교의 그런 주장에 대해 현혹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광고를 실은 취지를 밝혔다.
또한 그는 이번 광고 문구로 정해 놓은 게 몇 가지 있었는데, 기독교 측의 반발을 걱정하는 광고사들의 염려로 내용을 여러 번 수정해 앨버트 아인슈타인 박사가 말한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 없다’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독교측에서는
이런 치졸한 안티 기독교 운동에 기독교계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종교든 비판 받고 견제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유독 기독교에 대해서만 비판의 차원을 넘어 조롱 경멸하는 내용을 광고로까지 내보내며 공격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올바로 사용하는 일이 아닐 뿐더러 특정 종교에 대한 악의적 도전이다.
내용의 왜곡도 심각한 문제다. 반기련은 자신들의 안티 기독교적 신념과 정서를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해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발언을 차용했다. 그의 권위를 빌리는 것이 기독교의 모순점을 드러내는 데 더 효과적이라 계산한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사실 관계의 크나큰 오류를 불러왔다.
아인슈타인의 종교관은 매우 복잡하다. 정식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철저한 종교 부정론자도 아니었다.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유신론과 무신론을 오가며 고뇌한 인물이다. 이번 버스 광고에 사용된 대로 신을 부정하는 듯한 말도 했지만 종교를 긍정하는 용어를 사용한 적도 많았다. 논문에 나타난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더 알게 됐다”는 표현이나 죽기 1년 전 친구에게 보낸 서신에서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에 지나지 않으며 과학이 없는 종교는 눈이 먼 것과 다름없다”고 한 말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아인슈타인의 종교관은 전체적 맥락에서 조명돼야 하는데도 반기련은 그의 발언 중 필요한 부분만 발췌, 대중을 오도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버스 광고를 중단하기 바란다.
네, 저분은 왜또 저럴까요.
1.
기독교 왈
"이는 표현의 자유를 올바로 사용하는 일이 아닐 뿐더러 특정 종교에 대한 악의적 도전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면 무신론자들도 무신론의 자유가 있다.
왜 우리들은 종교에 대해서 한수 접어주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종교에 대해서는 한껏 양보의 태도를 취하는 것인가?
종교인들이 신의 존재를 마음껏 외칠 권리가 있다면 무신론자들도 신이 없음을 어디서든 주장할 권리가 있다!
무신론적 위치에서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것은 종교 탄압이나 차별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런 오해를 받을까 두려워 자신의 무신론적 주장을 쉽게 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스스로가 교양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런것 같다. 웃끼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과 양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미덕이 될수는 있지만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양보는 잘못된 사회적 관습에서 비롯된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착각에 불과하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우리보다 우월하거나 더 큰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의 의견은 성서에 적힌 신의 말만큼이나 존중받아야만 한다.
우리는 '무신론 선언문'에서도, 악의적 도전이나, 종교 자유의 권리를 제한하는것이 아님을 알수있다.
무신론에서의 신은 종교의 신을 비롯하여 이데올로기, 교리 등의 모든 도그마들을 의미합니다.
Atheism defines every idelogy, creed, catechism, god of religion as dogma.
유신론은 교리나 종교 등의 도그마가 인간에 선행한다고 하지만,
무신론은 인간이 도그마에 선행한다고 정의합니다.
Theists argue dogma precedes the human
whereas atheists proclaim no dogma precedes the human.
그러므로 무신론은 인간을 근본으로 하는 인본주의입니다.
Therefore atheism is humanism rooted in human.
무신론은 인간의 본질을 ‘자유로운 사유’로 정의합니다.
Atheism defines human's nature as 'free thought'.
세계의 60억 인구 중에서 동일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There is no identical thought out of worldwide 6billion population.
모든 이가 저마다의 환경에서 자신의 사상을 구축하며,
심지어 동일한 종교의 교인들이라 하더라도 그 신앙의 내용은 같지 않습니다.
Every single person is to develop his unique thought based on his sorroundings,
and even believers of same religion do not have same faith.
이는 인간의 본질이 자유로운 사유라는 것을 변증합니다.
This testifies that human's nature is 'free thought'.
인간의 특성이 자유로운 사유이기에, 자유로운 사유를 억압하는 도그마는 반인간적입니다.
For human's nature is 'free thought', any doma which oppresses free thought is
anti-human.
무신론은 인간의 사유를 고착시키는 모든 지배적 도그마를 반대합니다.
Atheism opposes all ruling dorma that locks up people's thought.
인간의 진리는 사유를 규정하여 고착하는 도그마가 아니라
‘모든 도그마로부터의 자유’라는 것이 무신론의 신념입니다.
The faith of atheist about thruth of human is not the dogma ruling and
locking people's thought but free from any dogma.
무신론의 신념에 따라, 무신론자는 자유사상을 지지하며,
다른 생각들을 거부하는 배타적 도그마를 반대합니다.
Following to the faith, atheist is in support of free thought and is
against cliquish dormas which refuse other thoughts.
만일 인간과 우주를 창조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의 본질은 인간의 본질을 위배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If there is to be god of creator, the nature of god should not deviate from human's nature
인간의 본질이 자유로운 사유이기에, 신의 본질 또한 자유로운 사유일 것입니다.
Since Human's nature is free thought, the nature of god be of free thought too.
따라서, 무신론은 궁극적 신의 유무를 불구하고 항상 정당합니다.
Therefore athrism is always just right despite god's existence.
신이 없다 하여도 인간의 본질을 위배하지 않으므로 무신론은 정당합니다.
If there is no god, atheism is just right as it doesn't deviate from human's nature.
신이 있다 하여도 신의 본질을 위배하지 않으므로 무신론은 정당합니다.
If there is god, still atheism is just right as it doesn't deviate from the nature of god
I am worried about the position religion enjoys in our society.
You can attack other's political view, criticize a football coach but cannot attack one's religious faith.
그러나 사람들의 종교적 신앙을 비판하지는 못한다.
It's a kind of immunity from criticism that religion enjoys, despite being proven to be mostly illogical.
I want Atheists to come together and establish a God-neutral political view,
a view of their own, for a better balanced world.
보다 균형잡힌 세상을 위하여, 나는 무신론자들이 결집하여 신으로부터 중립적인 정치적 견해,
자신들의 견해를 사회에서 형성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2.
기독교왈
"반기련은 아이슈타인의 발언 중 필요한 부분만 발췌, 대중을 오도하고 있다"
"아이슈타인은 기독교였다. 죽기 1년 전 친구에게 보낸 서신에서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에 지나지 않으며 과학이 없는 종교는 눈이 먼 것과 다름없다”고 한 말이 대표적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 한번 그 기독교가 말하던 죽기 전 1년전에 친구에게 보낸 서신을 봅시다.
아인슈타인은 1954년 철학자 에릭 굿카인드에게 보낸 편지에서편지 까지 왜곡하는 멋진 기독교...
“the word God is for me nothing more than the expression and product of human weaknesses,
the Bible a collection of honorable but still primitive legends which are nevertheless pretty childish.”
(번역)"내게 신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나약함의 표현이자 산물 이상이 아니며,
성경은 훌륭하지만 여전히 원시적인 -굉장히 유치한- 전설의 모음집입니다."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150339)
기독교는,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론 같은 ‘과학’으로 신의 창조를 설명하겠다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을 비난할 때,
"아인슈타인이 신과 창조론을 믿었다"든가 또는 "말년에 신앙이 없었음을 크게 후회했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
옛날 창조과학에서부터 사용하던 전술인데, 역사상의 위대한 과학자가 자기들 편이었다고 하면서
(진화론 나오기도 전의 위인전에 나오는 옛날 위인들 다 인용하면서)
너희가 이런 위대한 과학자보다 뛰어나지도 않은 주제에 잠자코 창조론을 믿으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이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다면 좀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미안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예를들어,
In response to the telegrammed question of New York's Rabbi Herbert S. Goldstein in 1929: "Do you believe in God? Stop. Answer paid 50 words." Einstein replied "I believe in Spinoza's God, Who reveals Himself in the lawful harmony of the world, not in a God Who concerns Himself with the fate and the doings of mankind." Note that Einstein replied in only 25 (German) words. Spinoza was a naturalistic pantheist.
1929년 뉴욕의 랍비인 Herbert S. Goldstein이 전신으로 한 질문인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50단어로 답해 주십시오.”에 대해서 아인슈타인은 “나는 인류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신이 아닌, 세계의 질서 있는 조화로 나타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습니다.”라고 답했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어 25단어만으로 대답했다.
스피노자는 자연주의의 범신론자였다.
http://en.wikipedia.org/wiki/Albert_Einstein
실제로, 아인슈타인을 언급하는 것은
(창피하니까) 피해야 할 사항의 하나로 창조론 사이트에서도 나올 정도이다.
“Einstein held unswervingly, against enormous peer pressure, to belief in a Creator.”
in “Arguments we think creationists should NOT use”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aq/dont_use.asp
3. 기독교왈 "그..그럼 오역한 글로 광고하지마셈 ㅡㅡ"
특정 종교를 반대하는 모임들이 주축이 되어 서울 시내 버스 광고에 무신론적 홍보를 시작했다. 그 문구는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라고 하면서 엘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글을 인용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나는 이 홍보의 동기나 목적은 차치하고라도, 우선 이 문구가 서울 시내에 돌아다닐 때 한국인이 지닌 영어 문장에 대한 이해가 이처럼 저급하다는 점에 대해 온 세상 앞에 드러내는 격이 될까 매우 우려가 된다.
이것은 영문의 직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본래 의미를 충분히 살려낸 의역도 아니다.
왜냐하면 함께 사용된 영문은 "I cannot conceive of a God who rewards and punishes his creatures...."이기 때문이다.
rewards and punishes를 어떻게 "심판한다"는 말로 번역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우리 말에서 "심판"이라는 말의 어감은 rewards의 편보다는 punishes에 비중이 쏠려 있다는 점이다. 누구도 심판이라는 말을 대할 때 밝고 긍정적인 면으로 이미지를 받을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특정 종교나 유신론적 체계를 부정하기 위해서 홍보를 한다손 치드라도, 좀 상식에 맞는 근거와 자료를 사용해야 할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다면 어떤 배경 하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 과연 이해나 하고서 이런 문구를 인용하는지 정말 안타깝다.
그저 홍보의 목적 달성에만 급급한 나머지 대중들의 반감을 끌어 모으기에만 헐떡거리는 이들의 모습이 세계인들 앞에 또 하나의 못난 한국인(ugly Korean)의 모습으로 비쳐질까 우려가 된다. 문맥상의 진의를 표현하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지금이라도 인용된 단 한 문장만큼이라도 올바르게 번역을 해주었으면 한다.
배 X 철 (X결대학교 교회사 교수, 성령운동연구가 )
배 모씨, 영어공부는 고사하고 성경공부가 덜된 상태군요.
Final Judgement (Last Judgement, 최후의 심판)에 따라
상을 주거나 벌을 주게되므로 (rewards and punishes)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 라는 번역은 아주 잘된 번역입니다.
그리고 배 모씨가 "아인슈타인의 신"에 대해 주절거린 내용은 그야말로 견강부회.
아인슈타인 왈 : 인간사에 간섭하는 신 X, 조화의 신 0 = 아무리 잘 봐줘야 Deism 정도.
하기야 뭐, 야훼의 피조물들은 대뇌신피질이 단백질이 아니라 진흙이니까.
노아의 홍수를 인용하면, 배 모씨는 혹시 거품을 물지 않을까요?
"나는 무수한 임산부와 아이들을 노아의 홍수로 익사시킨 신을 상상할 수 없다."
또는
"나는 입다의 딸을 인신공양 받은 신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을 살해한 신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수백만의 유태인이 나치독일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방치한 신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아기 예수 때문에 수많은 아기들이 살해되는 것을 방치한 신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자신의 피조물을 영원히 벌주기 위해 불타는 지옥을 미리 만들어 둔 신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로버트 박이 까불다가 먼지나게 두들겨 맞은 것을 방치한 신은 이해할 수 있다.."
마치며,
-기독교인이 "종교의 자유"를 들먹이는 것은 넌센스
종교의 자유는 "개인이 어떤 종교를 선택할 자유" 같은 포지티브한 개념을 말하는 것으로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실상은 종교끼리의 분쟁을 막기 위한 예방적 장치일 뿐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종교의 자유를 채택하게 된 배경은, 가톨릭-프로테스탄트, 성공회-가톨릭, 청교도-성공회 등 기독교 끼리 험악한 살육과 분쟁에 질려버린 이들이 인류사에서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종교의 자유란 공허한 것입니다.
이들은 종교의 자유를 들먹일 이유도 없고 자격도 없습니다.
다른 생각을 용납치 않는 교리를 가진 기독교로서 그들이 종교의 자유를 외칠때는 자신들의 종교적 권력이 약하거나 존재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신앙이 그들보다 더 큰 권력에 의해 침해당할 때 뿐인 것이죠.
게다가 종교에 대한 비판이나 분석을 마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는 오류도 기독교 같은 종교에서나 나타납니다.
염치가 없죠. 이는 그 종교인이 착하든 말든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착할 수 있어도 종교적 도그마와 독트린에 의해 움직인다면 그는 더 이상 선인이 아니라 광신무뢰배일 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한다면 그건 그들이 무슨짓을 하든 자신들의 광신배 행위를 간섭하지 말아 달라는 말 밖에는 안됩니다.
역사에 기록된 가장 극악하고 잔인한 범죄들은 종교 또는 그와 비슷한 성스러운 동기의 미명하에 행해져 왔다 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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